처음엔 “제작 의뢰”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외관을 만드는 일보다 “정확히 움직이고, 반복 재현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훨씬 컸습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게 연구 개발처럼 흘러갔고,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에 끝난, 꽤 긴 시제품 제작기가 되었습니다.

분명히 제작 의뢰였는데 R&D가 되어버린 제작 후기 ^_^
■ 요구사항이 단순 제품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
이번 전신 스캐너는 좁은 공간에서 카메라 스캐너가 상하로 이동하며 촬영하고, 하부 회전판이 한 타임마다 정확히 1회전을 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우리의 고뇌의 시간은 여기서부터였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전원, 네트워크 케이블이 함께 오르락내리락 해야 함.
움직이는 케이블이 걸리거나 꼬이면 즉시 품질 문제, 또는 고장으로 연결됨.
회전판은 사람 체중, 자세, 마찰 상태에 따라 부하가 여러가지로 발생 함.
“한 바퀴”라는 기준이 기구적으로는 단순해 보여도, 사람이 올라선 기준은 단순하지 않음.
■ 가장 많이 시간을 쓴 포인트는 딱 2가지였다
- 포인트 A. 케이블도 함께 움직인다
카메라 모듈이 상하 이동할 때, 전원과 네트워크 케이블도 같이 움직입니다. 이건 “부품 하나”가 아니라 설계 자체였습니다.


케이블이 어느 경로로 움직이는지
최대로 꺾이는 구간이 어디인지
움직임에 따라 케이블이 간섭하지 않는지
정비 시 분해가 쉬운지
이런 요소들이 모두 스캔 품질과 다운타임에 바로 연결됐습니다.
- 포인트 B. 회전판 1회전은 0과 1로 안 끝난다
초기에는 회전판을 0과 1, 즉 기준점만 잡고 “정확히 한 바퀴”를 돌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중과 관성 때문에, 같은 명령을 줘도 결과가 미세하게 달라졌습니다.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기구적으로 완벽하게만 잡으려 하면 시간이 끝이 없다
약간 “오버”로 돌리고, 그 오버 처리와 정렬은 소프트웨어가 흡수하는 게 현실적이다
즉, 이 장비는 기구 설계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보정까지 포함한 시스템으로 완성되는 제품이었습니다.
■ 제작 방식, 그래서 이렇게 갔다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외관을 어렵게 만들어놓으면 기능 이슈가 생길 때 다시 분해해서 개선하는 비용이 너무 커집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초반은 속도를 택했습니다.



초기 관절 및 구동 관련 파트는 FDM으로 빠르게 제작
움직임과 간섭, 조립성, 접근성을 먼저 검증
구조가 안정되면 NCT 판금으로 외관 및 프레임을 정리
이후 테스트를 반복하며 계속 수정
3D프린팅이 “빨리 만들어보는 도구”라는 말이 흔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속도가 곧 개발 비용을 줄이는 핵심이 됩니다.
■ 마무리, 이번 프로젝트에서 남은 교훈
전신 스캐너 같은 장비는 “외관 제품”이 아니라 “정밀도 높은 반복 시스템”이다.
좁은 공간에서 케이블, 전원, 네트워크는 부품이 아니라 메인 설계 항목이다.
외관을 일찍 확정할수록, 기능 개선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시제품 초반은 FDM이 효과적이다. 빨리 만들고 빨리 리뷰하고 빨리 개선 하는게 정답 인것 같습니다. 참고로, NCT는 판금에서 많이 쓰는 CNC 터렛 펀치 방식(수치제어 터렛 펀치)으로, 표준 금형들을 바꿔가며 펀칭 가공을 하는 공정입니다. 외관 패널이나 브라켓류를 빠르게 만들 때 유리합니만, 기준 공구가 맞는게 없으면 이것도 만들어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더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중대형 가동 장비는 부품을 잘 만들었다고 다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케이블의 길이와 동선, 한 번 더 도는 오버 회전, 아니면 얼만큼 조금 더 돌아야 안전치수 인지, 반복 되는 회전속에서의 원점의 정밀도, 그리고 그 오차를 받아주는 소프트웨어까지, 전부가 하나의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제작 의뢰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연구 개발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테스트를 할수록 문제는 더 또렷해졌고, 수정할수록 장비는 조금씩 사람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처음부터 멋지게”보다 “처음엔 단순하게”가 맞다는 걸 배웠습니다. 분해와 개선이 쉬운 구조, 빠른 FDM 검증, 그리고 데이터를 남기는 습관이 결국 개발의 전체 시간과 비용을 줄여 주었습니다.
초여름에 시작해 겨울을 넘어 해가 지나는 시점에서 끝난 시제품이지만, 끝난 건 한 대의 장비가 아니라 이것과 또 연동 되는 다음 프로젝트가 버티고 있었다는 기쁘지만 가슴속 부담감이 벅차오르는 사실... 어렵게 만든 만큼, 얻은 것도 확실했고 모두가 긍정적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 주셔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이 다음 프로젝트에서, 저에게 가장 큰 설계 뿐만 아니라 제작에서도 많은 학습이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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